금융개혁은 이런 부실은행들을 하루빨리 퇴출시키는 것이었다. 부실은 행이 존속하게 되면 신용수렴 현상이 계속 진행되면서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당시 국내 은행의 부실대출 규모는 120조 원에 이르렀다. 정부는 동화, 동남, 대동, 경기, 충청 등 5개의 부실은행을 1차적으로 퇴출하고 남아 있던 은행들은 합병과 국외매각, 외자유치, 증자 등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모색했다.
1997년 말 2,101개나 되었던 금융기관 중 659개가 문을 닫았다. 또한 금융기관의 'BIS자기자본비율'을국제수준으로 높이고 부실채권비율을 12.9% 에서 3.4%로 크게 낮췄다. 살아남은 은행들은 건전성과 수익성이 높아져 2002년 한 해에 5조 9천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금융기관을 건전화시키는 과정에서 159초 원의 공격자금이 투입되었다. 추가적인 은행의 도산을 막고 살아남은 은행들이 버티기 위해서는 당연히 투입되어야 할 자금이었다. 일각에서는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금 용기관의 국외매각을 서두르는 나머지 제값을 받지 못하고 팔았다는 소위 '헐값매각'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게다가 2단계 구조조정 과정에서 추 가적인 공적자금 투입을 위해 국회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공적자금을 마구잡이로 퍼부었다며 김대중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한 달 이상 추가 지금 조성에 동의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공적자금 투입은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는 무슨 수를 써서든 살려놓고 볼 일이다. 돈이 얼마가 들든, 팔다리 하나가 잘려 나가든 목숨을 살려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당시 한국 상황이 꼭 그러했다. 더군다나 그런 상황을 만들어놓은 것이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인 것을 감안하면 불을 질러놓은 방화범이 불이야'를 외쳐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불을 끄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았다.
일련의 흐름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제일은행의 매각과 관련한 이야기를 짚어보아야 한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제일은행 헐값매각에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1997년 9월, 정부는 제일은행 지분 51%를 5천억 원에 뉴브리지캐피털에 팔기로 결정한다. 그 이전까지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제일은 행에 8조 4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상태였다. 단순히 수치만 놓고 보면 황당한 정사일 수밖에 없었다. 무려 8조 4천억 원을 도입해 놓고 단돈 5천억 원 에 팔아 넘겼으니 이전 혈값매각 정도가 아니라 거저 준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 같은 멍청한 짓을 한 것일까? 더구나 국내 기업도 아닌 외국계 사모펀드에 이렇게 할값에 매각했으니 국민정서상으로도 선 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일들은 왜 벌어지게 된 것일까? 그대
상황을 보다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자.
헐값매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1999년 3월, 정부는 제일은행에 1조 5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이 자금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6월에 추가로 5조 원의 자금을 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제일은행을 파산시켰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 제일은행의 여신총액이 약 18조 원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 금액의 회 수압력만으로도 한국은 파산이었을 것이다. 한보철강의 부도 금액이 약5 조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금액이 어느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제일은 행 하나의 파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일은 행의 파산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다른 금융기관으로 파급되었을 것이다. 제일은행이 파산하는 그 순간 대한민국의 금융시스템은 '올 스톱'이 되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8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고도 제일은행을 단돈 5천 의원에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일은행 헐값매각에 대해 예금보험공사는 만약 제일은행을 청산시켰다면 국민 부담이 18조 5천억 원에 이르렀을것이라는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외국계, 그것도 은행도 아닌 사모펀드에 팔았던 것일 까? 이 때문에 후에 '국부유출'를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제일 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개피털이 금융기관도 금융지주회사도 아니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었는데 정부는 제대로 적격성 심사도 거치지 않은 채 은행을 넘겼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 또한 매우 억지스러운 주장에 불과하다. 역으로 따지면 당시 국내 여건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증명하는 것에 다름없다. 국내의 대기업 들은 물론이고 거대 은행들까지 나가떨어지게 생긴 마당에 어떤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제일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겠는가? 당시만 하더라도 인수 해주는 것 자체가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옳은 결정이었다. 2008년의 미국발 서브프라임사건을 돌이켜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당시 전 세계를 대공황 이후 최악의 불황으로 몰고 간 원인을 제공했던 사건이 바로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미 국정부가 헐값매각 논란에도 리먼브라더스를 외국에 매각했더라면 그 후 일어났던 심각한 불황은 상당 부분 완화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지난 1997년 한국의 IMP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처했을 때 신속한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