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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관한 마르크스의 견해

by 마이티제이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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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표준적인 이데올로기는 자본이 모든 사회에서 생산에 필요한 3요소의 하나라는 관념에 바탕을 둔다. 흔히 이 3요소가 모든 생산을 책임진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이 이데올로기에서는 세 가지가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며 대안이나 경쟁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모든 생산 에는 3요소의 협력이 모두 필요하다. 노동이 없으면 어떤 생산도 하지 못하며, 토지나 자본이 없어도 생산이 불가능하다. 이데올로그들은 이 세 요소가 평화롭고 조화롭게 협력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지만 이 이데올로기는 더 나아가 생산의 3요소는 각기 다른 세 종류 의 상품의 집합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토지, 노동, 자본은 시장에서 사고파는 세 가지 다른 종류의 상품의 이름이다. 상품들은 평화롭고 조화롭게 합력하지 않기 때문에, 상품 소유자들이 평화롭고 조화롭게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이데올로그들이 말하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


또한 이데올로그들은 사업가가 시장에 가서 생산에 필요한 세 가지 상품 요소를 각각 정해진 양만큼 산다고 주장한다. 뒤이어 사업가는 생산 과정에 서 이 요소들을 결합해 일정한 가치를 가진 상품의 형태로 생산물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상품을 시장에 내다 판다. 모든 게 제대로 기능하면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무척 흥미로운 사실을 볼 수 있다. 첫째, 토지, 노동, 자본의 3요소가 각각 생산에 공헌하는 것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사업가가 이 상품 각각에 지불한 가격(노동의 가격인 임금, 토지의 가격인 지대, 자본 의 가격인 이원[또는 이자)은 정확히 각 요소가 생산에 공헌한 가치와 맞먹는다. 가 요소는 생산에 공헌한 것 그대로 돌려준다. 그러므로 어떤 경제적인 착취도 있을 수 없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이 갈등이 아닌 조화가 자본주 의의 자연스러운 사회 상태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런 보수 이데올로기는 거시 경제학 이론을 다룬 많은 보수적인 경제학 교과서에서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이데올로기에서 자본은 다른 생산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은 사회를 위해 생산하고 생산성에 근거해 보상받는다. 이데올로기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누군가 자본의 생산성을 의심한다면, 용광로가 없이 철을 만들거나 삽이 없이 도랑을 파거나, 드라이버 없이 나사를 조이거나, 일반적으로 도구 없이 뭔가를 생산하려고 해보면 된 다. 자본은 도구(나 다른 생산수단)인 상품과 동일시된다. 그리고 도구가 필 수 불가결하기 때문에 자본 역시 필수 불가결하다고 이데올로그들은 주장 한다.


마르크스는 곧바로 이런 분석의 난점 몇 가지를 지적한다. 인간은 언제나 도구를 사용했다. 그렇지만 일부 사회에서 자본주의와 자본, 이윤은 이렇게 존재하지 않는 사회적 범주다. 사실 자본주의, 자본, 이율은 겨우 몇백 년 동안 존재해 왔다. 토지와 도구가 단지 생산 과정에 들어왔기 때문에 지대와 이윤을 만들어 본 것은 아니다. 지대나 이윤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토지와 도구를 사용했다. 분명 도구 그 자체는 자본이 아니다. 게다가 누군가 토지와 도구를 소유하고도 지대나 이율을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토지나 도구를 소유한 사실 자체가 반드시 또는 자동으로 지대를 산출하는 토지나 이웃을 산출하는 자본을 자본주의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도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맥락 안에서는 자본의 본성을 확인하는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이런 불일치를 해결하는 열쇠는 토지와 노동 과 자본이 같은 의미에서 생산요소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게다가 도구와 토지를 상품으로 간단하게 구입하려면, 이것들이 이윤을 산출하는 자본과 지대를 산출하는 토지가 되기에 앞서 다른 사회적 조건이 필요하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생산 과정은 인간이 자신이 바꿀 수 있는 환경 속에 서 살아간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생산이란 인간이 이렇게 자연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토지가 이런 환경으로서 필요한 것은 확실하지만, 자연이 무언가를 생산했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특질을 비인간 사물에 귀속시키는 일종 의 혼동이라고 할 수 있다(마르크스는 이것을 물신 숭배라고 불렀다). 자연 이 인간이 사용하기 알맞게 스스로 변형됐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감각이 없는 무정물인 토지가 스스로 뭔가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혼동의 결과(또는 일종의 물신 숭배)인 것처럼, 도구가 스스로 뭔가를 생산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로 혼동의 결과다. 도구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다. 인간 노동으로 생산된 사물일 뿐이다. 이 도구를 생산한 사람은 물론 다른 생산에서 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 그러나 도구 자체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오직 사람이 물건을 생산하며, 대개 그 과정에서 도구를 사용한다.

 

현대적 생산을 하려면 도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은 맞다. 그렇지만 이 말이 도구가 생산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생산이 사회적이며 생산자들이 상호 의존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목수는 망치와 못, 톱과 목재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존한다. 목수가 집을 치고 나면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은 망치 하나 못 몇개, 톱 하나, 목재 등이 목수와 더불어 집을 지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데올로기와 정반대로, 마르크스는 인간, 이 사회적으로 그 집을 지었으며, 일부는 망치를 생산하고, 다른 이들은 각각 못과 톱과 목재를 생산하고, 또 다른 이들은 이 사회적 생산 과정의 마지막 단계(목공)를 수행함으로써 이 모든 인간적 노력을 결합하는 식으로 노동을 분담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자본은 단순히 하나의 생산하는 상품이 아니다. 자본은 매우 특수한 사회관계의 집합이 존재할 때만 도구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따라서 자본은 도구 자체 또는 상품으로 판매되는 도구 자체가 아니라 특수한 사회관계의 집합이라는 맥락에서 상품으로 판매되고 사용되는 도구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자본은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만 존재한다. 첫째, 도구가 상품으로 생산되고, 둘째, 이 상품을 생산에 사용하는 계급이 아니라 다른 사 회 계급이 소유하며, 셋째, 도구를 사용해서 생산하는 계급은 자신들이 만든 생산물의 소유권을 갖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서만 생산을 허락받는다. 그 대신 이 생산자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상품의 가치보다 낮은 가치의 임금을 받아들어야 한다. 이 차이, 또는 초과 가치는 이자나 지대, 이윤의 형태로 소유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므로 자본은 인간의 모든 생산적 상호 의존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이런 상호 의존하는 생산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그 대가를 뽑아낼 수 있는 자본가들의 능력이다. 망치와, 못과 목재를 사용해야 하는 목수 와 그 목수에게 필요한 이 물건의 생산자들 사이에는 몇 명의 자본가가 존재한다. 노동자 못 생산자는 목수가 아니라 자본가를 위해 못을 생산한다. 망치 등, 무제 노동자 생산자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목수는 백당 자본가들에게서 이 물건들을 직접 받지는 않는다. 건설 회사를 소유한 자본가가 다른 자본가들에게서 이 물건들을 산다. 

 

자본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두 계급을 규정하는 사회관 계다. 자본은 자본주의 이전에 상당한 규모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자본주의 가 무너진 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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