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지수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은 전두환 정권 말기였다. 1980년 말 106.9에 불과했던 주가지수가 꾸준히 상승하여 1987년 말에는 525.1을 기록했다. 특히 1986년의 연간상승률은 67.5%에 이르렀고, 1987년에는 92.3%에 달했다. 그럼에도 이때부터 벌어진 투기 장세를 방치한 것부터가 중대한 정책적 실수였다. 주식시장의 이런 투기 장세는 '수요의 시간이동" 을 일으킴으로써 조만간 수요의 공동화에 따른 폭락 장세를 불러오고, 이것은 곧이어 자금경색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남긴다는 사실은 1970년대 후반의 경험에 의해 이미 입증된 바 있었다.
그렇다면 전두환 정권 말기쯤에는, 늦어도 노태우 정권 초기에는 주식 시장의 과열을 식힐 수 있는 정책적 조치들이 취해졌어야 했다. 1988년 1월 29일에야 겨우 주식거래위탁증거금을 20%에서 40%로 인상했고, 2월 3일에는 80%로 인상했으며, 2월 8일에는 다시 100%까지 추가로 인상했다. 그러나 증시과열을 잡기에는 미흡한 조치였고 이미 너무 늦었다.
결국 1989년 4월 1일에는 주가지수가 1,007.8까지 치솟았고, 이후에는 이 거품이 꺼지면서 줄기차게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1989년 12월 11일에는 주가지수가 844.8을 기록함으로써 4월 1일의 최고수준 대비 16.2% 하락했다. 그러자 금융기관, 특히 투신사들의 경영 수지가 악화되었다. 주가 하락에 따른 신용수렴 작용으로 금융기관의 신용 경색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경기도 하강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12월 12일 에는 소위 12• 12조치'라는 대대적인 증시부양조치를 발표했다.
'12*12조치'는 투신사로 하여금 주식을 무제한으로 매입하도록 했고, 그 매입자금은 은행이 무제한 지원하도록 했으며, 은행의 지원자금은 한국은 행이 지원하게 했다. 그 밖에 기관투자자를 확대시키고 동시에 주식매입을 촉진하는 등의 혁명적 내용을 담았다. 실제로 시중은행은 2조 7천억 원을 투신사에 지원했다. 그러나 주식시장 부양의 효과는 기대한 만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더 줄기차게 증시부양 조처를 했다.
1990년 3월 28일에는 기업공개 여건을 강화하여 주식공급을 줄이도록 했다. 5월 4일에는 증권사, 상장사, 은행, 보험회사 등이 공동 출자하여 2조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기금'을 설립하였다. 5월 8일에는 추가로 증권시 장안정 대책을 발표하여, 증권시장안정기금을 4조 원으로 확대함과 동시에 증권거래 세율도 대폭 인하 0.5%-0.2% 했다. 6월 5일에는 투신사에 내외자 혼합형 수익증권을 허용하여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증시를 부양하려고 했고 6월 28일에는 제2금융권의 금리를 인하했으며 1% 포인트, 9월 7일에는 증권회사 신용공여 관리를 강화했다. 9월 18일에는 투신사가 수익률 보장형 수익증권을 2조 6천억 원어치나 발매하도록 했다.
주식시장 부양 정책의 결과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로도 주식시장을 부양시키지 못했고, 투신사들의 경영수지만 더욱 악화시키고 말았다. 1991년 5월 2일에는 투신사의 경영개선 대책을 발표했고, 국고 여유자금 중 2.3조 원을 투신사에 지원하여 은행 차입금을 상환하게 했다. 그래도 투신사의 경영개선이 이뤄지지 않자, 7월 1일에는 5개의 투자금융회사를 증권사로 전환했고, 10월 28일에는 영국계 2개 증권사의 지점 설치를 최초로 허용했다. 11월 30일에는 주식시장의 대 외 개방을 발표했다. 외국인 투자는 1인당 발행 총수의 3% 이내. 그리고 외국인 전체 비중은 10% 이내로 제한했다. 외국자본을 직접 끌어들여 주식 시장을 부양하려 한 것이다. 그럼에도 주식시장은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1992년 5월 27일에는 투신사 경영정상화 대책을 추가로 발표했다. 한국은행 특융 2조 9천억 원과 국고 여유자금 3천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총차입금은 5조 9천4백억 원인 반면에 유가증권보유액은 4조 9천6백억 원에 불과하여 투신사는 파산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1992년 8월 24일에는 증권시장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또 발표했다. 증안기금에 추가로 5천억 원을 출자하고, 은행 신탁계정과 보험회사 그리고 연기금의 주식매수를 3조 4천억 원 늘리도록 했다. 1993년 1월 29일 에는 국고 여유자금 1조 원을 투신사에 추가로 지원했다. 1993년 3월 25일에는 한국은행이 대출금리를 인하하여 투신사의 이자 부담을 줄여줬다 6.0%-,5.0% 이에 1993년 중반부터는 드디어 주식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하여 연말에는 주가지수가 866까지 상승했다.
1994년에 들어선 뒤에는 주식시장이 다시 과열 조짐을 보이자, 1월 14일 에는 증권시장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기관투자자의 매수를 자제하도록 했고, 증안기금이 보유 중인 주식 중 8천억 원어치를 매각했다. 그래도 주식시장이 안정을 되찾지 못하자 1월 28일에는 증권시장 안정 대책을 추가로 발표했다. 공개와 증자를 통해 신주의 공급을 확대하고, 기관투자가 보유 중인 주식을 매각하도록 했으며, 민영화 대상 공기업의 주식도 매각하기로 했다.
2월 18일에는 증권거래세를 다시 인상했다. 이후 증시가 냉각되는 듯하자 증시안정대책을 발표한 지 불과 2개월 만인 1994년 3월 3일 증권시장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증시가 다시 과열되면서 11월 중의 평균주가가 1,110.5를 기록했고, 연말에도 1,027.4 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주식시장은 다시 장기 침체의 길로 들어서면서 정책당국을 한껏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