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35 주식시장에 놀아난 주식시장 부양정책 주가지수가 급등하기 시작한 것은 전두환 정권 말기였다. 1980년 말 106.9에 불과했던 주가지수가 꾸준히 상승하여 1987년 말에는 525.1을 기록했다. 특히 1986년의 연간상승률은 67.5%에 이르렀고, 1987년에는 92.3%에 달했다. 그럼에도 이때부터 벌어진 투기 장세를 방치한 것부터가 중대한 정책적 실수였다. 주식시장의 이런 투기 장세는 '수요의 시간이동" 을 일으킴으로써 조만간 수요의 공동화에 따른 폭락 장세를 불러오고, 이것은 곧이어 자금경색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남긴다는 사실은 1970년대 후반의 경험에 의해 이미 입증된 바 있었다. 그렇다면 전두환 정권 말기쯤에는, 늦어도 노태우 정권 초기에는 주식 시장의 과열을 식힐 수 있는 정책적 조치들이 취해졌어야 했다. 1988년 1월 29.. 2024. 1. 28.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인한 안정화 정책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던 김재익이 한국 경제를 되살려냈다는 신화가 지금까지도 진실처럼 믿어지고 있다. 재정팽창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다가 대규모 국제수지 적자를 일으켰고 그 바람에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또한 우리 경제가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IMF의 경제신탁 통치 이후에 재정 긴축과 강력한 구조조정 등 안정화 정책이 실시되었고, 김재익 수석이 떠난 뒤에 이 정책이 꾸준히 유지된 덕분이었는데 말이다. 이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재정긴축은 1970년대 이래 지축 되던 고질적인 물가 불안을 잠재었다. 참고로 소비자물가는 1963년 이후 1973년 딱 한 해만 제외하고는 매년 두 자릿수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 한 해마저 지표를 조작하여 .. 2024. 1. 28. 박정희 정권 초기 경제정책과 총체적 부실: 금융활동 동결의 실패와 외환위기 현존하는 대부분의 자료는 박정희 정권의 초기 경제정책까지 미화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의 경제정책은 실패의 연속으로 국가 경영능력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예를 들어 1961년 5월 16일 전 금융기관 의 금융 활동을 동결시킨 것은 경제시스템을 붕괴 위기에 처하게 한 결정적 인 실책이었다. 불과 석 달 뒤인 8월 24일에 전면 해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그 실패를 반증한다. 이 기간에 금융기관의 경영수지는 빠르게 부실화되었고, 신용수렴 현상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여기에 6월 20일에는 금융기관 대주주 의결권을 10% 이내로 제한하는 임시조치법을 제정하고, 8월 13일에는 부정축재처리법에 의해 당시 5개의 민간은행이 사실상 국유화되었다. 10월 29일에는 부정축재처리.. 2024. 1. 28. 한국의 경제회복과 미군 통치 시기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한국에 급파된 미군 사령관 하지는 한국에 질서를 확립하는 일을 최초의 임무로 삼았다. 그가 한국에서 목격한 것은 일본 이 구축했던 경제조직의 완전한 붕괴였다. 한국 경제는 경제순환의 체계조차 붕괴되었던 것이다. 하지는 1945년 12월 1일 동아일보 복간 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여러분이 생활해 온 일본식 경제조직의 완전한 붕괴로 해방 직후의 수개월 동안에는 곤란이 있을 것입니다. 새 기원의 기초가 서는 최초의 수개월 동안에는 조선 국민의 눈앞에 직면해 있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열의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 사령관이 말한 '일본식 경제조직의 완전한 붕괴'란 한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기본적 근간이 되는 성장 잠재력이 완전히 괴했음을 의미한 다. 당시 일본식 경제조직은 사.. 2024. 1. 28. 이전 1 ··· 4 5 6 7 8 9 다음